[과학동아 why science - 11월]

왜 수학이 의료장비 개발에 동원될까

- 인체 들여다보는 수학적 관상법


북소리만 듣고도 북의 모양이 둥근지 또는 세모인지를 알아낼 수 있을까. 수학자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이 물음에는 ‘역문제’라고 불리는 흥미로운 수학적 문제가 함축돼 있다. 역문제는 외부 데이터만으로 내부 성질을 찾아내는 문제로, 의료영상, 비파괴 검사, 금융 산업에 응용되고 있다.


글/ 강현배․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 hkang@math.snu.ac.kr


'북의 모양을 들을 수 있습니까?'

질문이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은 질문을 다시 생각해보기 바란다. 바른 질문이라면 '북의 모양을 볼 수 있습니까?' 또는 '북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까?' 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은 흥미로운 것이 못된다.

수학자들은 '북의 모양을 들을 수 있느냐'는 이 이상해 보이는 질문에 관심이 있다. 왜일까. 답은 단순하다. 이 물음에는 매우 흥미로운 수학적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질문은 북의 소리를 듣고 그 모양을 알 수 있느냐를 묻는 것이다. 만약 북의 모양이 둥글다면, 높은 소리는 작은 북에서, 낮은 소리는 큰 북에서 나온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북소리를 듣고 그것이 둥근 북에서 나온 소리인지, 세모 북에서 나온 소리인지는 알 수 있을까. 수학자의 답은 '예' 다.


단면의 넓이로부터 입체 모양 복원

이제 조금 다른 얘기를 해보자. 요즘 대부분의 큰 병원은 컴퓨터단층촬영기, 즉 CT(Computerized Tomography)를 비치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장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기계 안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곤욕을 치른 사람도 있긴 하지만, CT는 신체를 해부하지 않고 그 내부를 촬영할 수 있는 의료진단 장비로서 인류에 크게 공헌하고 있다.

CT가 병원에 처음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CT는 1971년 영국의 한 병원에서 처음으로 임상에 쓰이기 시작했다. CT를 만든 기술자 하운스필드와 코르맥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79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독자들은 아마도 왜 필자가 수학에 대해 얘기하다 말고 의료장비인 CT로 화제를 바꿨는지 의아할 것이다. 그 까닭은 CT 속에 매우 흥미로운 수학적 아이디어가 들어 있고, 그 아이디어가 CT가 세상에 등장하는 과학적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CT는 신체에 X선을 일정한 방향으로 쏘고, 이를 통과해 나온 X선의 강도를 측정한다. 즉 신체를 통과하는 동안 X선의 강도가 얼마나 감쇠했는가를 측정하는 것이다. 뼈처럼 밀도 높은 부분을 통과할 때에는 X선의 강도가 많이 감쇠하고, 근육처럼 밀도가 낮은 부분을 통과할 때에는 적게 감쇠한다. 이제 이런 작업을 CT 장비를 돌리면서 모든 방향으로 수행하면, 모든 방향에서 X선 강도의 감쇠율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데이터로부터 신체 내부 영상을 얻을 수 있는데, 우리는 그 영상을 보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왜 수학이 CT와 관련이 있는지가 분명치 않다. 이제 수학을 얘기해보자. CT가 보여주는 영상은 간단히 말하면 신체 내부의 밀도 분포다. 신체 내부의 밀도 분포는 함수로 구할 수 있으며 그 함수를 영상으로 나타내면 우리가 보는 CT 영상이 된다.

그런데 어떤 방향으로 측정한 X선 강도의 감쇠율은 그 방향에서 밀도함수의 적분에 해당된다. 따라서 수학적 질문은 미지 함수의 모든 방향의 적분값을 알 때 그 함수를 복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밀도 함수를 3차원 공간에 그래프로 나타내면, 어떤 방향의 적분값이란 이 그래프를 평면으로 잘랐을 때 생기는 단면의 넓이가 된다. 즉 우리의 질문은 어떤 입체를 모든 방향의 평면으로 자른 단면의 넓이(밀도 함수의 적분값)를 알 때, 입체의 모양(밀도 함수)을 복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한가지 주목할 것은 단면의 모양이 아니라 넓이가 정보로 주어진다는 것이다. 만약 단면의 모양이 주어진다면 이 질문은 흥미롭지 못한 쉬운 문제일 뿐이다.

모든 방향의 평면으로 자른 단면의 넓이로부터 입체의 모양을 복원하는 수학적 문제는 1917년 체코의 수학자 라돈이 구체적인 복원 공식을 발견함으로써 해결됐다. 이 라돈의 수학적 복원공식이 단층촬영의 기본적 알고리듬을 구성한다. 라돈의 복원공식이 곧바로 구현돼 CT가 만들어졌다면, 라돈도 당연히 노벨상을 받았으리라.


20여년간 수학자 붙잡은 유방암 진단기법

하지만 20세기 초 인류는 라돈의 복원공식을 구현할만한 과학기술적 역량을 갖고 있지 않았다. CT의 탄생은 푸리에변환의 계산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인 알고리듬인 FFT(빠른 푸리에 변환), 수리 정보 이론의 발전, 영상처리 기법의 발전이 이뤄진 반세기가 지난 후에나 가능했다.

라돈의 수학적 아이디어가 반세기 후에 새로운 기술의 탄생으로 연결된 것과는 달리, 오늘날에는 새로운 수학적 아이디어가 곧바로 새로운 기술의 탄생으로 연결된다. 그것은 수많은 계산 알고리듬의 개발과 컴퓨터 성능의 획기적 향상에 기인한다.

하나의 실례를 보자. 미국 국립암연구소가 집중적으로 개발을 지원해야 한다고 추천한 새로운 유방암 진단장비 중에는 상당 기간 동안 수학자의 관심을 끌어왔던 전기영상기법이 포함돼 있다. 

암세포 조직은 정상 조직에 비해 4-5배의 전기 전도율을 갖는다. 즉 암세포 조직은 전기적 측면에서는 이질 전도체, 또는 전도체 내에 존재하는 결함인 셈이다. 실제로 피부에 전극을 부착하고 전류를 흘려보내면 신체 내부에 전압이 분포되는데, 신체 내부에 암, 즉 전기적 결함이 있을 경우는 없을 경우와 비교해 전압 분포에 왜곡이 생기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 전압 분포를 다시 피부에 부착된 전극을 통해 측정하고, 그 측정된 값을 데이터로 삼아 내부의 전도율, 또는 임피던스의 분포를 영상화하면, 특별히 다른 전기 전도율을 갖는 암세포 조직의 위치나 크기 등을 알아낼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전기영상기법이다.

전기영상기법은 X선을 이용해 유방암을 검사하는 기존의 유방촬영기에 비해 보다 안전하고 저렴한 방법이라는 점에서 큰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20여년 동안 많은 수학자들이 여러 목적으로 이 전기영상기법에 대한 연구를 해온 결과, 이론과 실제 모두에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와 해결책들이 마련되고 있다. 실제로 이미 수학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몇가지 장비가 상품화됐다.


비파괴 검사, 의료 영상, 금융에 응용

수학적으로는 이같은 전기적 현상이 미분방정식이라는 방정식으로 표현된다. 미분방정식이란 함수와 그 미분이 관련된 방정식으로, 해가 함수 형태로 주어진다. 그리고 전도율의 분포는 그 방정식의 계수가 된다. 그러므로 전기영상기법을 수학적으로 번역하면, 신체의 표면에서 측정한 방정식의 해로부터 그 방정식의 계수, 즉 전기 임피던스를 구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수학적 문제를 처음 제기한 사람은 놀랍게도 칼데론이라는 아르헨티나의 한 석유회사 기술자였다. 그는 이후 수학을 공부하고 많은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겼는데, 특히 자신이 제기했던 임피던스 복원 문제의 해결 과정에 큰 공헌을 했다.

북의 모양에 대한 문제나 CT, 전기영상기법의 공통점은 북소리, X선 강도의 감쇠, 피부에서 측정되는 전류와 전압과 같은 외부에서 측정되는 데이터만으로 북의 모양, 내부의 밀도 분포, 임피던스 분포와 같은 내부 성질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렇게 외부에서 측정되는 데이터만 갖고 내부의 정량적 성질을 탐사하는 수학적 문제를 일반적으로 '역문제'(Inverse Problem)라고 한다. 역문제 연구가 바로 수학적 관상법인 셈이다.

역문제는 다양한 응용과학기술과 관련되면서 발전하고 있다. 대표적 응용 분야로는 비파괴검사와 의료 영상, 금융 산업 등을 들 수 있다. 세부적인 응용의 내용을 보면, 교량의 균열 탐사, 항공기 또는 파이프 내의 부식 탐사, 목재 안에 있는 옹이의 실시간 탐사, 철판과 금속 강체에 존재하는 결함의 실시간 검사 등 다양한 비파괴 검사, 레이더 기술과 항공사진 분석, 지진파를 이용한 지진 발생지 탐사, 유방암 진단과 같은 의료 진단, 주식과 선물 시장에서의 지수 변동 계산 등 실로 다양하다. 특히 의료 부분에서는 초음파 검사, MRI(자기공명영상기기), PET(광자방출영상기기)와 같은 진단 장비가 이런 연구를 통해 개발돼 이미 임상에 쓰이고 있다.

역문제는 크게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한 측정과 수집된 데이터로부터 내부 성질을 알아내는 과정으로 구성된다. 이 두번째 과정이 바로 수학적 문제에 해당하는 것이며, 수학자의 큰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좁은 의미에서 역문제는 이 두번째 과정을 지칭한다.

데이터 수집을 위한 측정 방법에는 전기 현상, 전자기 현상, 탄성 역학, 산란 현상 등 다양한 물리적 현상이 개별적 또는 복합적으로 이용된다. 그리고 어떠한 물리적 현상이 이용되느냐에 따라 기술되는 수학적 방정식이 다르다. 찾고자 하는 내부 성질은 방정식의 계수에 녹아들어 있어서, 방정식의 계수를 찾으면 원하는 내부 성질을 정량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해로부터 거꾸로 함수 구하기

우리가 중학교에서부터 배워온 방정식을 푼다는 것은 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미분방정식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미분방정식을 연구하는 사람의 주된 관심사는 해를 구하거나 해의 성질을 이해하는데 있다.

하지만 역문제는 해에 대한 매우 제한적인 정보를 갖고 그 방정식의 계수를 찾아내는 것이다. 즉 미분방정식의 함수해에 대한 제한된 정보로부터 그 미분방정식의 계수를 구하는 것이다. 역문제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다. 방정식의 해를 구하지 않고 거꾸로 계수를 구하기 때문이다. 어떤 과정에 입력을 가하면 그 과정을 통한 후 출력이 나오게 된다. 보통의 문제는 어떤 출력이 나타나는지에 관심이 있다. 하지만 역문제의 관심은 입력과 출력의 관계를 보고 그 과정이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를 파악하는데 있다.

사실 역문제의 해를 구하는 일은 지극히 어렵다. 그 까닭은 역문제의 비선형성에 있다. 어떤 계가 비선형이라는 것은 입력량의 변화에 비례해서 출력량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가령 입력량을 2배로 했을 때 출력량도 2배로 늘어날 경우, 이 계는 선형이다.

옛소련의 학자들이 대개 군사적 목적으로 역문제를 해결하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해 왔지만 20세기의 중반까지만 해도 역문제는 고도의 비선형성 때문에 수학자들 사이에서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러한 역문제가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루고, 수학의 중심이 되는 분야 중 하나로 성장한 것은 지난 20여년 동안의 일이다.


국내 연구 세계적 수준

20세기를 통한 수학의 놀라운 발전과 컴퓨터의 성능 향상을 통한 계산 능력의 획기적 신장이 이런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공학적 측정 기술이나 계산 능력의 획기적 발전은 역문제를 해결하는 기본적 전제를 제공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역문제 해결을 위한 효과적 알고리듬의 개발이다. 수많은 수학자들이 역문제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는 까닭이 바로 이 때문이다. 효과적 알고리듬은 필연적으로 수학적일 수밖에 없다.

수학적 역문제의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들의 해나 근사해를 구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발견하면, 그것이 곧바로 새로운 기술의 개발로 연결돼 대단히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이는 순수 수학적 연구 결과가 새로운 기술의 개발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최근의 추세와 일치한다. 현대 고급 기술은 모두 수학적 기술이라는 주장과 일맥상통한 것이다.

현재 유럽과 미국 등 선진과학기술을 추구하는 국가의 무수한 수학자들이 역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그 내용은 역문제와 관련된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이론적 연구에서부터, 의료진단 장비의 개발에 관련된 연구, 레이더 기술에 관련된 연구, 또한 산업 현장에서 제기된 다양한 문제에 대한 응용 연구까지 실로 다양하다. 이러한 여러 형태의 연구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서, 이론적 연구의 결과나 아이디어가 응용 연구에 필요한 새로운 알고리듬을 창출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건국대,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등의 수학과 교수들이 역문제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으며 그 관심도가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국내 연구진들의 연구 결과는 그 수준이 매우 높아 국제적 인정받고 있다.

수학적 역문제에는 우리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수많은 난해한 질문들이 있다. 지적인 도전 정신이 강한 많은 젊은이들이 도전해볼만한 훌륭한 분야임에 틀림없다. 그들의 수학적 아이디어가 라돈의 경우처럼 인류 문명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이다.